경고
이 글에는 똥과 관련된 지저분한 얘기가 나오니 주의 바란다.
이 글을 읽어볼 필요가 있는 독자
[] 치질이 의심되는 분
- 배변이 불규칙하고 배변 시 시간이 많이 걸리거나 고통스러운 분(변비 증세)
- 배변 시 피가 나오는 분
- 변이 오래되고 크고 딱딱해서 정상적으로는 도저히 누기 힘들었던 경험이 있는 분
위 사항에 해당하는 분들은 이 글을 더 읽지 말고 즉시 대장 항문 전문 외과 병원에 가시기 바란다. 치질 수술, 정확히는 치핵 제거 수술에 대해 미리 알려고 하지 말고 상상하지도 마시라.
"있잖아. 사람은 말이야. 상상력이 있어서 비겁해지는 거래. 그러니까 상상을 하지 말아 봐. 존나 용감해질 수 있어." - 영화 '올드보이' 중 오대수의 대사
똥을 힘 줘서 눠서는 안 된다. 증세가 더 심해지면 병원에 안 가고 버틸 수 있는 병이 아니고, 병원에 늦게 갈수록 악화되어 종국에는 파멸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니 남자답게? 또는 여자답게? 버티지 말고 병원에 가는 게 용기이자 지혜이다.
[] 변비 증상이 있는 분
식이 섬유를 사서 매일 드시라. 한 달에 1만 5천원 정도면 된다. 의학적 효과가 입증되지도 않은 비싼 홍삼이나 오메가3 등을 드시지 말고 식이 섬유를 드시는 게 귀하의 소중한 항문과 평온한 삶에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식사 후 식이 섬유를 먹으면 당분의 소화 흡수를 늦추므로 혈당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 일일 1포로 효과가 없으면, 2포, 3포까지 늘리고 섭취 후 물을 많이 먹어야 한다.
치질(치핵) 수술 전 상황
나는 변을 자주 보지 않았다. 대략 1주일에 한 번 눴다. 야채나 김치도 안 먹고 고기를 많이 먹어서 그런 것 같다. 가끔 변기물이 빨갛게 되면서 피가 나온 것도 봤는데 배변 자체는 크게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 번은 오래된 변을 보는데 너무나 크고 딱딱하여 힘을 줘도 도저히 눌 수 없었다. 뱃속에 똥이 가득 차 있는데 눌 수가 없다. 절망감. 그래서 손가락으로 긁어 냈다. 이렇게 변기에 오래 앉아서 힘을 주면 치핵이 커지고 악화된다고 한다. 치핵은 항문 안쪽 벽에서 생겨난 불필요한 살덩이 같은 것으로서 악화되면 항문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다음 날 변을 보는데 항문 안쪽이 상당히 아팠다. 뭔가 제대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원에 갔더니 치핵 4도라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치핵 상태는 경미한 1도에서 심각한 4도까지 있다.
수술 받기 전까지 며칠 동안 집에서 변을 볼 때 상당히 아팠다. 변의가 느껴지면 공포감이 밀려 왔다. 아플 건데, 똥은 마렵고... 똥구멍이 찢어지도록 가난하다는 말이 있는데, 나는 가난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그 아픔을 절절히 느낄 수 있었다.
수술한 날
수술 자체는 짧게 끝났다. 먼저 척추에 주사를 놓고 하반신 마취를 했다. 의사 선생님이 항문에 원통형 막대 같은 걸 집어 넣고 툭탁거리더니 검붉은 걸 꺼내서 보여 주면서 절제한 치핵이라고 했다. 원통 주위로 41바늘을 자동으로 꼬매고 추가적으로 몇 바늘 더 꼬맸다고 한다.
병원 홍보 포스터에 무통 수술이라고 하더니 그럴만 했다. 그런데 무통인 이유는 자동 봉합기를 써서 빠르게 끝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반신 마취를 하고 수술 후 마약성 무통 진통제를 지속적으로(내 경우 48시간) 주입했기 때문이다.
고통스러운 건 회복 단계였다. 하반신 마취가 풀리면서 항문에 뭔가 묵직한 게 박혀 있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거즈를 박아 놨던 것이다. 그러니 누울 때나 앉을 때 거즈가 안쪽으로 눌려 들어가면서 불편하다. 딱히 아프다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6시간 동안 그러고 있다 보니 상당히 신경 쓰인다.
수술 후 1일차
신경 쓰이던 항문 내 거즈를 뽑아서 이제 좀 편해지나 했더니, 수술 부위가 묵직하고 작열감이 들면서 변이 나올 것 같은 느낌 또는 착각이 계속 들었다. 수술 후에 똥을 누면 봉합 부위가 터질 수도 있기 때문에 변기에 앉으면 안 된다. 그런데 항문에 힘을 줘서 똥을 참아서도 안 된다. 항문을 움찔거리면 안 된다. 방귀는 참아도 되지만 뀌는 게 좋다.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그래서 항문에는 힘을 안 주지만 똥을 요령껏 잘 참아야 한다. 그 요령이란 아랫쪽을 좀 긴장한 상태로 있다가, 그래도 뭔가 나오면 서서 지리는 것이다. 그게 방귀일 수도 있고, 변이 조금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변기에 앉은 것이 아니므로 똥을 눈 것은 아니다. 지린 거지.
아무튼 이렇게 똥을 애매하게 참는 상태로 하루를 버텨야 한다. 그러다 보니 오줌이 안 나온다. 잠 잔 시간을 포함해서 10시간 만에 결국 오줌은 눴는데 하복부의 긴장을 완전히 풀어서 그런지, 그만 묽은 똥을 왕창 지려버리고 말았다. 간호사에게 혼 난 후 배변 방지를 위해 요도에 소변 줄을 끼웠다. 그거 끼우면 아프냐고 물었더니 안 아프다고 했다. 끼우기 직전에 '약간 이상한 느낌이 들 수도 있어요'라고 하는데, 이상한 느낌이 아니라 그냥 존나게 아픈 거였다.
소변 줄을 끼우니 자동으로 소변이 오줌 주머니로 배출되고, 오줌을 참을 필요가 없으므로 똥을 참는 것도 약간 편해졌다. 그런데 소변 줄이 몸 안으로 들어와 있으므로 앉아 있기가 더 불편하고, 서 있자니 똥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게 방귀인지, 똥인지, 수술 부위 작열감에 의한 착각인지 알 수 없으니 참아야 하고, 눕기도 불편하다. 침대에 다리를 올리고 뒤로 눕는 동작조차도 이렇게 힘들 줄이야. 허리도 아프고 다리에 경련이 온다.
그날 밤에 혼자 한탄을 했다. 그 동안 나태하게 살아왔던 내 과거를 반성했다. 식이 섬유만 먹었어도 이렇게는 안 되었을 건데. 맨날 앉아 있고 걷지도 않고. 배는 엄청 나왔는데 내 거시기는 작게 움추려져서 소변 줄까지 끼워져 있고. 나 혼자 있을 때는 배가 얼마나 나왔는지 잘 몰랐다. 그런데 벗은 몸을 여러 간호사들이 보는 상황이 되니 민망했다. 참 볼품없이 보일 것이다. 게다가 아버님이라고 부른다. 결혼도 못했는데.
앞으로 다시는 수술을 받지 말자. 혈당 관리 안 해서 신장이 나빠져서 투석을 해야 한다느니, 뭐, 눈이 안 보이게 될 거라느니, 이딴 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 그 꼴 보느니 차라리 죽고 말지. 아무튼 시간을 보내다 보니 무통 진통제 덕분에 살짝 헤롱헤롱한 게 버티는 데 도움이 되었다.
수술 후 2일차
오전에 퇴원을 했다. 소변 줄은 끼운 상태지만 무통 진통제는 중단했다. 그랬더니 약 기운이 빠지면서 상당히 불편했다. 누워도 허리와 꼬리뼈가 아파서 잠을 자기 힘들었다. 서면 발바닥이 아프고 똥도 참아야 하고, 앉으면 전립선 부위와 엉덩이가 아프다. 그런데 시간은 보내야 하니 핸드폰이라도 보려면 손을 들어야 하는데 모든 자세가 불편하다. 그냥 마약성 진통제를 계속 맞을 걸 그랬나.
수술 후 3일차
똥을 조금 지렸는데, 의사 선생님이 그것도 배변을 한 걸로 쳐야 한다면서 오늘은 더 이상 똥을 누지 말라고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직장에 안 나가니 생리대를 한 채로 방귀만 뀌고 살짝 지리는 건 상관 없으니 할만한데, 만일 출근을 하는 사람이면 아주 불편할 것이다. 똥이 마려운 채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해야 한다면 말이다.
아무튼 오늘만 추가 배변 없이 잘 넘기면 회복이 안정화 단계로 접어든다고 한다. 소변 줄도 빼서 한결 앉아있기 편하다.
여담: 똥 잘 누는 행복 = 살아 있는 행복
똥을 잘 눌 때는 그게 행복인 줄 모른다. 못 누게 되면 그제서야 그 시절이 얼마나 편했는지 알게 된다. 시원하게 배변을 하고 난 후 깔끔하게 비워진 그 느낌. 그제서야 그게 소중하게 느껴진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
그런데 정말 똥을 잘 누는 게 행복인가? 많은 사람들이 똥을 잘 누는데 그런 걸 행복으로 봐야 하나? 그렇다면 왜 그 사람들은 행복해하지 않는가? 느끼지도 못하는 행복이 무슨 행복인가? 반대로, 똥을 잘 못 누는 사람도 당장 손가락, 발가락은 안 아프니 그걸로 행복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행복을 깨달을 수 있는가?
기독교에서는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친다. 실로 삶에 대한 진리의 말씀인 것 같은데 실천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틱낫한 스님이 가르친 대로(물론 예수나 에크하르트 톨리 등 많은 사람들도 비슷하게 가르친 대로) "무슨 일을 하든 걱정과 불안, 망상에 한 눈을 팔지 않고, 마음을 호흡과 발밑에 집중하며, 온전히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라"를 실천하고 "지금 여기 깨어있는 마음이 바로 정토요, 천국이다"라는 것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영어에 어프리시에이트(appriciate)라는 단어가 있다. 감사하다는 뜻도 있지만 이해하다, 감상하다는 뜻도 복합적으로 가지고 있다. 아마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에서 그 '감사'를 잘 나타내는 단어일 것이다. 뭔가를 이해하고 감상하니까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있는 것, 즉, 글을 읽고 있는 동작을, 눈이 아프지 않고 눈꺼풀도 잘 깜박인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고, 이해하고, 감상하면 평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들고, 그러한 집중 상태를 지속하는 게 삶의 숨겨진 행복을 느끼는 비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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