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요 '백만 송이 장미'의 멜로디와 그 반복 구절을 좋아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가사를 자세히 들여다 보니 노래 내용이 삶과 사랑에 대한 독특하고도 재미 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글에서 나는 삶에 대해 식견이 부족하지만 나름대로 가사의 의미를 해석해 보고자 한다.
백만송이 장미 노래 듣기
이 노래의 가사는 번안된 것이라기 보다는 가수인 심수봉 씨가 새로 쓴 것이다. 원곡은 라트비아 가요인 '마라가 준 인생'이고, 이후 가사를 바꿔 러시아 가수가 부른 것이 '백만 송이 장미'이며, 그 이후 다시 가사를 바꿔 심수봉 씨가 부른 것이 한국의 '백만 송이 장미'이다. 러시아 곡과 한국 곡의 가사의 유사성은 '백만 송이 장미'라는 주요 문구가 반복된다는 것이고 그 이외에는 거의 관련성이 없다.
원곡 및 번안곡에 대한 참고: 위키피디아 백만송이 장미 설명
우선 첫 부분을 살펴보자.
먼 옛날 어느 별에서 내가 세상에 나올 때
사랑을 주고 오라는 작은 음성 하나 들었지
사랑할 때만 피는 꽃 백만 송이 피워 오라는
진실한 사랑할 때만 피어나는 사랑의 장미
참 신기한 내용이다. 지구에서 처음 태어난 것이 아니라 원래는 외계인이라고 한다. 이건 불교의 윤회를 말하는 것 같다. 우주의 여러 별에서 삶을 반복한다는 의미이다. 심수봉 씨가 기독교인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기독교 세계관으로 이해하자면, 영혼이 신과 함께 있다가 세상에 육신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아무튼 지구에 온 목적은 진실한 사랑을 하는 것이고, 그 증표인 장미를 무려 백만 송이를 피우라고 한다. 내가 이해하기로, 진실한 사랑이란 나와 당신이 하나이고, 더 나아가 우주가 모두 하나라는 것을 깨닫을 때 서로 간에 샘솟는 따뜻한 유대감이다. 그렇다면 장미는 무엇일까? 내가 우주라는 것을 깨닫을 때 자연히 나타나는 기쁨과 평화를 말하는 것 같다. 일단 그 다음 가사를 살펴보자.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수백만 송이 백만 송이 백만 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일단 진정한 사랑에서 미워하는 마음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은 이해가 간다. 나의 애인이, 또는 내 자식이 내게 뭔가를 해 주기를 바라고, 그것을 해주지 않을 때 실망하거나 미워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다. 그건 인간의 욕망과 고통일 뿐이다. '욕망' 또는 '고통'이라는 단어가 이미 있는데 그걸 사랑이라고 포장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 가사에서 신기한 내용은 진정한 사랑를 하고 그 증표인 장미를 수백만 송이를 피우면 내 별나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수백만 송이의 장미를 피운 이 곳, 즉 지구가 이미 천국인데 내 별나라로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 이 가사 내용은 아무래도 기독교적인 내용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아무리 지상에서 사랑을 펼치더라도 지상은 고난과 시험의 공간일 뿐, 결국 내가 가야할 곳은 신이 있는 천국이다. 또는, 기독교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그냥 내 별나라란 내가 바라는 세계라고 해석한다면, '내 별나라로 간다'는 말은 지구든 어디든 상관없이 사랑을 꽃피우고 잘 산다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 다음 가사를 보자.
진실한 사랑은 뭔가? 괴로운 눈물 흘렸네
헤어져간 사람 많았던 너무나 슬픈 세상이었기에
수많은 세월 흐른 뒤 자기의 생명까지 모두 다 준
빛처럼 홀연히 나타난 그런 사랑 나를 안았네
이 내용은 고통 속에 사는 인간을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구원했다는 말일까? 또는 누군가로부터 헌신적인 사랑을 받고 사랑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는 것일까? 다음 부분도 계속 보자.
이제는 모두가 떠날지라도 그러나 사랑은 계속될 거야
저 별에서 나를 찾아온 그토록 기다리던 이인데
그대와 나 함께 하면 더욱 더 많은 꽃을 피우고
하나가 되는 우리는 영원한 저 별로 돌아가리라
아... 이 가사를 해석하기 시작할 때는 몰랐는데 끝까지 보니 예수 믿고 구원 받아서 천국에서 영생을 산다는 이야기로 해석하는 것이 가장 쉬운 해석이 되겠다. 일단 심수봉 씨는 그런 의도로 쓴 것 같다. 그럼 피어나는 장미란 복음의 전파 또는 새로운 신도의 탄생이라는 건가 보다. 백만 송이 장미는 회개하고 거듭난 백만 신도라는 건가.
이 노래를 꼭 '순례-고난-예수-천당'으로 요약할 필요는 없겠다. 예수의 가르침도 해석하기 나름인데 예술의 해석이야 더욱 자유롭다. 따라서 나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자 한다. 다분히 불교적인 해석이다(나는 부처와 예수의 가르침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한 번 태어나서 죽는 것으면 끝인 것이 아니라, 우주와 함께 태어나서 우주와 함께 생을 반복한다. 그러한 삶은 고통스러울 때도 있고 이별의 아픔도 겪게 된다. 그러나 무한히 반복되는 이 삶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나와 우주가 하나라는 것, 물질은 환상이라는 것, 고통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깊은 기쁨과 평화를 누릴 수 있다. 더구나 이미 깨달은 사람이 나를 도와주므로 덜 외롭게 깨달음의 길을 갈 수 있다. 이미 깨달은 사람이란 부처일 수도, 예수일 수도, 알라일 수도, 나의 어머니일 수도 있다. 미워하는 마음 없이 아낌 없이 사랑을 주면서 백만 송이의 찬란한 장미를 피워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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