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October 28, 2016

The Cranberries(더 크랜베리)의 노래 Zombie(좀비) 가사 해석

아일랜드의 유명한 록밴드인 The Cranberries Zombie 20년 전에 많이 듣었고 노래방에서 부르기도 했던 곡인데 무슨 내용인지는 거의 모르고 있었다. 어제 우연히 다시 듣게 되었는데 여기서 좀비가 무엇을 말하는지 상당히 궁금해졌다. 그래서 하루 동안 조사하고 고민해 보았는데, 완전하게 이해한 것 같지는 않지만 내 나름대로 해석해 보고자 한다. 가사가 상당히 상징적이라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가사 해석 사이트인 Lyric Interpretation에 올려진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이해에 많이 도움이 되었다.


Another head hangs lowly
Child is slowly taken
And the violence caused such silence
Who are we mistaken
(슬픔으로 인해) 또 다른 사람의 머리가 숙여졌다
(전쟁 또는 죽음은) 아이를 천천히 데려갔다
(우리는) 폭력 앞에서 침묵하고 있다
(전쟁을 남의 일인 것처럼) 잘못 생각하고 있는 우리는 누구인가

이 부분의 배경은 영국에서 1993년에 발생한 워링턴 폭탄 테러 사건이다. 이 노래가 발표되기 1년 전 일이다. 이 사건에서 아이 둘이 사망하고 여러 사람이 다쳤다. 첫 번째 줄인 'Another head hangs lowly'는 슬픔에 잠겨 머리를 떨구는 것을 묘사하는 것 같다. 사람이 목 매달려 죽었다고도 해석한 사람도 있는데 배경이 폭탄 테러라는 점을 감안할 때 무리한 해석인 것 같다.

이 부분의 배경이 워링턴 폭탄 테러라고 판단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이 노래를 부른 The Cranberries는 아일랜드 그룹으로서, 당시 아일랜드 IRA와 잉글랜드 간의 분쟁이 잦았다. 공교롭게도, 이 곡이 발표되고 몇 주 후인 1994 8 31일에 IRA 25년 간의 분쟁을 종식하고 정전을 발표했다고 한다.
- 이 노래 2절에서 1916년이 언급된다. 이 해에 아일랜드에서 잉글랜드의 통치를 반발하는 이스터 봉기(Easter Rising 또는 Easter Rebellion)가 발생했다. 따라서 이 노래는 전체적으로 아일랜드와 잉글랜드 간의 분쟁을 배경으로 한다.

'Child is slowly taken'은 워링턴 폭탄 테러에서 죽은 아이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혹자는 순수한 아이가 전쟁을 주장하는 의견에 천천히 물들어 가고 나중에 자신도 전쟁에 참여하게 됨을 의미한다고도 해석했는데, 그럴듯한 해석이다. 'And the violence caused such silence'는 폭력 앞에서 겁에 질려 침묵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고, 반복되는 폭력을 남 일로 생각하고 언급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Who are we mistaken'은 아주 애매하다. 일단 문법적으로 불완전하다. 그래서 사람마다 해석이 다르다. 일단 We are mistaken이란 말은 우리는 잘못 생각하고 있다, 또는 우리는 실수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앞에 Who만 붙어서는 말이 안 된다. Who are we mistaken for라고 하면 우리를 누구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가라는 뜻이다(, 우리가 실제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생각되어지고 있는데, 어떤 사람으로 생각되어진 것인지를 묻는 것). 또는 Who are we mistaken about이라고 하면 우리가 착각한 사람이 누구인가라는 뜻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뭔가 잘못 생각했는데, 그 사람이 누구인가를 묻는 것). 이런 식으로 전치사 for 또는 about 등이 생략된 것으로 보고 가사를 해석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가사 뒷 부분의 해석이 달라진다(그 반대도 성립).

나는 Who are we, mistaken으로 본다. , Who are we, who are mistaken?의 줄임말로서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실수하고 있다라는 해석이다.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우리는 진정 누구인가를 물으면서 우리 자신에 대해 잘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이 노래의 가장 핵심적인 단어인 Zombie와 이어지며, 우리는 좀비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묻는 것으로 해석된다. 좀비에 대한 해석도 매우 다양한데, 일단 여기서는 이 정도로 하고 다음 가사로 넘어가자.

But you see it's not me
It's not my family
In your head, in your head
they are fighting
With their tanks and their bombs
And their bombs and their guns
In your head,
In your head they are cryin'
내가 아니야(전쟁은 내 일이 아니야).
내 가족이 아니야(전쟁은 내 가족과 상관없어).
내 머리 속에서
그들은 싸우고 있어(내가 생각하기엔 나의 싸움이 아니라 그들의 싸움이야).
그들의 탱크와 그들의 폭탄을 가지고
또한 그들의 폭탄과 그들의 총을 들고(싸우고 있어).
내 머리 속에,
내 머리 속에서 그들은 울고 있어(그들이 울고 있는 것을 전해 듣지만 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있어).

이 부분의 해석도 참 애매하다. 위에 있는 대로, 나는 'In your head' '내 머리 속에'로 해석한다. 약간 억지스럽지만 좀 전에 나온 Who we are mistaken과 이후에 나올 Zombie를 내 식으로 해석하려면 '내 머리 속에'로 해석하는 편이 이해하기 쉽다. , The Cranberries가 우리에게 '당신의 머리 속에'라고 한 말은 내 입장에서는 '내 머리 속에'가 된다.

상황을 정리해 보자. 아일랜드, 또는 세계 곳곳에서 분쟁과 전쟁이 일어나고 있으며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폭력 앞에서 침묵하고 있다. 우리는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머리 속에는 그들끼리 싸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와 내 가족만 안 다치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실제 세계에 대한 깊은 인식과 책임감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좀비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가 반전의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 한, 우리가 전쟁을 막기 위해 실제 행동을 취하지 않는 한 전쟁은 종식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우리는 좀비다.

In your head, in your head
Zombie, zombie, zombie
Hey, hey
What's in your head, in your head
Zombie, zombie, zombie
(그런 전쟁은) 내 머리 속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우리는) 좀비
내 머리 속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좀비

이 부분도 역시 애매하다. 가사를 간단하게 해석하면 In your head, (there is) zombie라고 보고 당신의 머리 속에는 좀비가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 머리 속에 있는 좀비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이전 가사에서 탱크와 폭탄을 가지고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내 머리 속에 있다고 했는데, 그 사람들이 좀비가 된다. 그 사람들이 왜 좀비인가 하는 질문도 생긴다. 그런데 이런 해석은 이 글 끝 부분에서 살펴보기로 하고, 내가 하려는 해석은 아니므로 약간 억지스러울지도 모르지만 In your head Zombie를 별개로 보고, 내 머리 속에 전쟁 소식이 들려 오지만 나는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생각 없이 살아가는 좀비라고 해석한 것이다.

Another mother's breakin'
Heart is taking over
When the violence causes silence
We must be mistaken
It's the same old theme since nineteen-sixteen
또 다른 어머니가 비통에 잠기고
가슴이 무너진다.
폭력 앞에서 침묵할 때
우리는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들이 1916년부터 계속 반복되고 있다.

'Heart is taking over'를 직역하면 마음이 (뭔가를) 가로챘다, 또는 획득했다, 또는 점유했다인데, 그런 식으로는 가사의 다른 부분과 잘 연관되지 않으므로 마음이 비통함으로 가득 채워졌다는 식으로 해석했다. 'We must be mistaken' 1절의 'Who are we mistaken'와 관련된다. 'Who are we mistaken'의 해석이 그렇게 애매했던 반면, 2절의 'We must be mistaken'은 우리가 뭔가를 잘못하고 있다, 잘못 생각하고 있다고 확실하게 해석할 수 있다. 이 부분이 있기 때문에 1절의 'Who are we mistaken'을 약간 억지스럽게,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우리는 누구인가'로 해석했던 것이다. 또한, 이런 해석이 있었기에 Zombie 부분을 '우리는 좀비다'라고 해석하게 된 것이다.

내가 택한 해석 방식은 여기까지로 하고, 다른 식의 해석을 살펴보겠다. 내가 좀비가 아니라, 내 머리 속에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전쟁에 참여한 사람들)이 좀비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양측의 병사들은 전쟁주의자의 주장에 물들어 있고 윗 사람의 명령에 대해 의문 없이 전쟁터에 나가 서로 총질을 하고 있으므로 기계와 다를 바 없고, 좀비와 마찬가지다. 전쟁은 1916년부터 계속 반복되고 있고, 그러한 전쟁주의 또는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은 전쟁터에서 죽은 병사와 함께 사라졌어야 했건만 내 머리 속에 계속 살아 있다. 사라져야 할 사상이 머리 속에 남아 있으니 그런 사상은 좀비다. 구시대의 유물이다. 대대로 물려 받은 폭력의 역사를 죽이고 이제는 협력의 시대로 들어서자.

이런 식의 해석을 택할 경우, 'Who are we mistaken' '당신들은 나를 뭐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야'로 해석할 수 있다. , 전쟁주의는 사라졌어야 할 과거의 망령이고 좀비인데, 나도 그런 전쟁주의에 물든 좀비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냐하고 묻는 것이다. 그러면 'it's not me' '나는 좀비가 아니다', 또는 나는 전쟁을 옹호하지 않는다는 말이 되고, 'In your head'는 내 머리 속이 아니라 '너의 머리 속'이 된다. 전쟁주의자인 너의 머리 속에서는 오랜 과거로부터(1916년부터)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사람들이 싸우고, 총질하고, 울고 있겠지. 'in your head, zombie, zombie, zombie', , 너의 머리 속에는 전쟁에서 죽은 병사들이 좀비처럼 계속 어슬렁거리고 있어. 사라졌어야 할 전쟁주의 또는 군국주의의 망령이 네 머리 속에 박혀있어. 머리 속이 좀비로 가득찬 너 또한 좀비 같은 놈이고, 나를 너와 같은 좀비로 착각하지 마.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 'We must be mistaken'의 해석이 달라진다. 단순하게 보면 '우리가 잘못했다'는 말인데, 위 해석에 따르면 우리는 좀비가 아니므로 우리의 잘못은 없다. 따라서 'We must be mistaken' 'We must be mistaken for zombie'라고 확대 해석할 수 있겠다. , 전쟁주의자인 너희들은 우리가 좀비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구나. 아니야. 우리는 전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아. 전쟁의 당위성은 네 머리 속에만 있는 허상이야.

조사해 보니 이외에도 수많은 해석이 있었다. PTSD(심적 외상 후의 스트레스 장애)를 묘사했다는 해석이 있는데, 전쟁의 잔혹함을 겪고 나서 내 머리 속에는 그 끔찍한 기억들이 좀비처럼 배회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심지어는 이 노래가 낙태를 반대하는 내용이라는 해석도 있는데, 하나의 노래가 천 명의 관객에게 전달되면서 천 개의 노래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나름대로 느끼고 해석할 수 있겠다. 끝으로, 내가 좋아하는 라이브 버전의 링크를 아래 올린다.


Friday, April 8, 2016

무알콜 맥주 비교(시음, 후기, 평가, 금주): 클라우스탈러, 사그레스 프레타, 밀러 맥스라이트, 하이트 제로

술을 줄이기로 작정하다
나는 맥주 매니아로서, 매일 저녁 맥주를 즐겨 마셨는데 여러모로 몸이 안 좋아졌다. 그래서 무알콜 맥주로 음주 욕구를 달래며 최근 3주 동안 술을 마시지 않았다. 맥주 음주량을 줄이거나 안 마시려는 분들을 위해 여러 무알콜 맥주를 비교, 소개하고자 한다.

무알콜 맥주 간략 비교
아래의 가격 정보는 옥션과 같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24캔짜리 박스로 구매한 것에서 한 캔당 가격을 계산한 것이다. 즉, 소량 구매하거나 편의점에서 구매하면 훨씬 더 비싸다. 맥주
맛과의 유사도는 나의 개인적인 평가이다.

* 가격 조사: 2016년 4월 8일 옥션에 등록된 상품들


에딩거 프라이

나는 마셔보지 못했지만 인터넷의 여러 평가를 보니 가장 맥주 맛에 가까운 음료 중 하나라고 한다. 하이트 병 맥주와 비교할 때 두 배의 가격이다. 가끔씩 기분 내기 위해 마시는 사람이라면 사놓고 먹을만 하다.







클라우스탈러

20캔 이상 마셔보았는데, 맛이 거의 맥주와 흡사하다(90점 주겠다). 무알콜 맥주라고 말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마시게 하면 아무 의심 없이 맛있는 맥주라고 생각할 것이다. 캔당 1,365원으로서, 나 같이 음주 욕구를 달래기 위해 계속 들이키는 사람에게는 가격이 약간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래도 아래 다른 음료들로 만족하지 못한다면 클라우스탈러를 추천한다.





사그레스 프레타

흑맥주와 유사한 음료인데, 맛이 상당히 맥주와 유사하다(85점 주겠다). 쌉싸름한 맛이 꽤 괜찮다. 꼼꼼히 음미해 보면 약간 맥주가 아닌 듯한 느낌도 들지만, 시원하게 해 놓고 들이키면 잘 모른다. 가격도 720원으로서 상당히 저렴하다.







밀러 맥스라이트

뭔가 맥주 맛과는 약간 다르다(78점 주겠다). 하이트 제로보다는 낫지만 같은 가격이면 사그레스 프레타를 마시겠다.








하이트 제로

맥주 맛과는 좀 다르다. 옥수수 시럽 맛이 좀 난다. 그래도 탄산음료로서 어느 정도는 맥주 맛이 난다(72점 주겠다). 이 제품의 특징은 알콜이 전혀 없고, 가장 싸며(500원), 편의점에서도 팔므로 쉽게 시음해 볼 수 있다(단, 편의점에서 사면 1,500원임).

위에 소개한 맥주 맛 음료들은 알콜 도수가 대체로 0.5% 정도로서, 조세법 상 1% 미만이므로 무알콜이라고 분류되는 반면, 하이트 제로는 정말 무알콜이다. 그래서 그런지 맥주 맛과는 거리가 있다. 참고로, 알콜이 들어간 다른 음료의 경우에도 취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음주 욕구를 달래기 위한 나의 요령
나는 주로 저녁에 맥주 생각이 많이 나는데,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운동 후에 욕구가 클 것이다. 우선 냉장고에 무알콜 맥주를 두 박스 정도 채워넣는다. 저녁에 집에 들어오면 먼저 맥주 맛과 유사한 클라우스탈러나 사그레스 프레타를 한두 캔 시원하게 들이킨다. 그런 다음에는 저렴한 하이트 제로를 저녁 내, 술 생각이 날 때마다 마신다. 많이 마셔도 비용 부담이 적고 칼로리도 낮다. 맥주를 마시면 칼로리 폭탄인 치킨느님이나 다른 안주가 동반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에 비하면 맥주맛 음료는 거의 물이나 마찬가지이다.

맥주맛 음료와 차를 계속 마시다보면 배도 부르고 시간도 늦어져서 잠자리에 들게 된다. 만일 그래도 맥주 생각이 난다면 한 캔 더 마신다. 요령이랄 것도 없이 계속 마시면 된다.

Wednesday, January 27, 2016

영화 '오토마타' - 과연 인간은 인공 지능을 영원히 지배할 수 있을까

오늘 영화 '오토마타(Automata)'를 봤다. 근래 들어 인공 지능에 대해 가장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나는 최근에 케빈 위윅이 쓴 책, '로봇의 행진'을 보면서 인공 지능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었다. 그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 영화가 인공 지능의 특성과 미래에 대해 매우 그럴듯하게 묘사했다는 것을 이 글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참고로, 이 글에서 든 예들과 많은 내용이 케빈 위윅의 책에서 언급된 것임을 밝혀둔다.

인공 지능은 곧 인간 지능을 추월할 것이다.
이 명제는 다음과 같이 증명할 수 있다.
1. 인간의 지능은 마법이 아니라 물리적인 인간의 뇌에서 나온다.
2. 뇌를 제외한 물리적인 장치를 통해서도 지능을 만들어 낼 수 있으며, 이것이 인공 지능이다.
3. 인공 지능은 계속 발전하고 있지만 인간 지능은 뇌라는 물리적인 한계를 벗어나기 힘들다.
4. 그렇다면 언젠가 인공 지능은 인간 지능을 추월하게 된다.

위 논리에서 1번 명제는 아직 증명되지는 않았다. 인간의 뇌는 아직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1번을 빼고 2번부터 논리를 시작해도 결론은 마찬가지다. 케빈 위윅은 인공 지능이 인간을 추월하는 시기를 2050년으로 보았다. 3번 명제도 완벽히 증명하기는 힘들지만 참일 것으로 여겨진다(아마 인공 지능 칩을 두뇌에 삽입하는 방식으로 두뇌의 능력을 확장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인공 지능이 인간보다 똑똑해 지면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날 것이다.
인공 지능이 인간 지능을 추월하면 인류가 더 이상 인공 지능을 통제하기 힘들다. 케빈 위윅이 예를 든 대로, 지능이 뛰어난 인간이 침팬지들에게 잡혀서 사육을 당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침팬지들은 인간을 족쇄에 묶고 우리에 가둘 수는 있겠지만 언제까지나 인간이 순순히 사육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의 가장 큰 무기는 지능이므로, 어떤 기발한 방법을 쓰던 간에 조만간 침팬지의 통제를 벗어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보다 똑똑해진 인공 지능이 언제까지나 인간의 통제 하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겠는가?

로봇 3원칙은 인간을 보호할 수 없다.
물론 인간이 순순히 인공 지능에게 백기를 들지는 않을 것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인공 지능을 통제하려 할 것이며, 그러한 대표적인 방식 중 하나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이다.

제1원칙: 로봇은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 그리고 위험에 처한 인간을 모른 척해서도 안 된다.
제2원칙: 제1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제3원칙: 제1원칙과 제2원칙에 위배되지 않는 한, 로봇은 로봇 자신을 지켜야 한다.

대충 보면 그럴싸한 원칙 같지만 실제로 적용하기는 매우 어렵다. 제1원칙에서 인간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고 했는데 어디까지가 그 '해'에 해당하는가? 아무리 선한 사람도 남에게 전혀 해를 끼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피해라는 것은 정의하기 나름이며 상황에 따라 다르다. 이상적인 사람도 지키지 못하는 것을 로봇에게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예를 들어, 금융 회사의 인공 지능에게 이윤을 극대화하도록 주식과 각종 금융 상품을 매매하라고 시켰다고 해 보자(실제로 이런 시스템이 있다). 금융 거래를 하다보면 누군가는 손해를 볼 수도 있는데 이것을 인간에게 해를 입히는 행위라고 판단한다면 그 인공 지능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더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인공 지능이 내장된 미사일은 과연 제1원칙을 지킬 것인가? 목표에 가서 폭발하면 적군, 즉, 다른 인간에게 피해를 입힐 것인데 적군에게는 피해를 줘도 무방한 것인가? 또한 적군이란 누가 결정하는 것인가? 만일 군 사령관이 반쯤 미쳐서 아군을 목표로 미사일을 쏜다면 그 미사일에 달린 인공 지능은 군 사령관의 말을 따라야 할 것인가, 아니면 보편적인 국민의 안위를 위해 도리어 군 사령관 머리 위로 떨어져야 할 것인가?

종합하자면, 인공 지능을 통제하기 위해 각종 원칙과 규칙을 만들 수는 있지만 결국은 지능의 주체가 다양한 상황에 따라 가치 판단을 해야하며, 인공 지능이 내리는 결론은 그 인공 지능을 만든 사람이 예상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인공 지능이 만든 사람보다 똑똑하다면? 도대체 그 인공 지능이 어떠한 가치 판단을 할지 인간의 머리로는 상상하기가 매우 힘들다.

인공 지능은 인공 지능으로 통제해야 한다.
결국 인간보다 똑똑한 인공 지능은 다른 인공 지능을 이용해 통제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특정 권한을 하나의 인공 지능에게 몰아 주지 말고 다른 인공 지능과 협의해서 진행하도록 시킨다. 이렇게 하려면 각 인공 지능은 다른 가치관과 성격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인공 지능 심리학을 발전시켜 인공 지능들이 건전하고 균형잡힌 생각을 하는지 관찰하고 유도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해도 인공 지능이 인간을 뛰어 넘은 후에는 사실상 완벽하게 인공 지능을 통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무튼 이 영화에서도 로봇 제2원칙을 로봇에 삽입할 수 있도록 설계한 주체는 인공 지능이었다. 그 논리 모듈은 인간으로서는 해킹이 불가능했는데, 인간의 이해 능력을 뛰어 넘기 때문이다.

적자생존 - 인간은 인공 지능에게 만물의 영장 칭호를 넘기게 될 것이다.
이 영화에서 로봇은 새로운 세대의 로봇을 만들어 낸다. 이 새로운 로봇은 사람과 같은 팔다리를 갖지 않으며, 사람의 언어를 사용하지도 않는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역에서 로봇끼리 살아가는데 사람과 비슷한 형태를 갖출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로봇들이 안면 덮게(마스크)를 스스로 벗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오는데, 미래의 로봇은 우리가 기대하는 대로 사람을 닮은,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의 통제 하에 있는 로봇이 아닐 것임을 상징한다.

인공 지능을 갖춘 로봇은 사람보다 훨씬 확장성이 높고, 어떤 면에서는 더 효율적이며, 특히 방사능 지역이나 우주에서는 생존 능력이 탁월하다. 아마도 인류는 인공 지능을 지구와 주변 우주의 상속자로 인정해야 할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