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November 13, 2012

성재기 씨가 주장한 사랑과 결혼의 의미에 대한 나의 의견

남성 권익 운동가이자 남성연대의 대표인 성재기 씨가 쓴 <무소의 뿔을 딜도 삼아 당신들만 가라>라는 글에서 사랑의 존귀함과 결혼의 신성함을 되새기며 가능하면 이혼을 하지 말자고 주장했다. 나는 자식을 낳아 기르는 것이 결혼의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하는데, 성재기 씨는 그것보다는 사랑의 존귀함을 더 중요하게 내세웠기 때문에 그 글의 논리가 너무 관념적이고 실질적인 타당성이 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성재기 씨는 결혼한 사람이고 본인은 결혼을 안 한 40대 남성이라 나의 주장에 경험적 근거가 부족할 수도 있음을 밝힌다.

성재기 씨 주장: 인간이 일부일처제를 확립하던 시기에 남편 입장에서 실익이 별로 없지만 '익숙함에 따른 책임, 일말의 연민'이라는 감정, 즉 사랑이 있었기에 결혼 생활을 유지했을 것이다.
나의 주장: 자신의 후손을 남기는 실익이 있었을 것이다.

성재기 씨는 원시 시대에 아버지는, 누구 자식인지도 모를 아이와 더 이상 생식 능력이 없고 성적 매력까지 상실한 여성을 부양했다는 점에서 사랑이란 대체로 책임감과 친밀함이며 그러한 사랑이 있었기에 남성은 자신에게 실익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도 결혼 생활을 유지했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일부일처제의 기원에 대한 역사적 지식이 거의 없지만 다른 동물의 짝짓기 행태를 감안할 때 결혼은 자신의 자식을 낳아 기르는 실익이 있거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어서 성립되었다고 생각한다.

사자와 같이 일부다처제인 동물은 암컷들이 식량을 구하고 자식을 키울 능력이 있다. 강한 수컷으로부터 좋은 씨만 받으면 된다. 많은 조류에서 볼 수 있는 일부일처제는 자식의 양육을 수컷과 암컷이 협력해야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에 형성되었을 것이다. 인간의 아기는 그 어떤 동물의 새끼보다도 연약하고 오랜 기간 동안 양육을 해야 하며, 여성은 임신과 양육의 기간 동안 사냥은 커녕 채집도 원활하게 하지 못하므로 남편의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협력을 받는 대신 여성이 남편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친밀감, 정서적 안정감, 성관계 서비스를 비롯하여 그 자식이 남편의 자식이라는 확신이다. 만일 여성이 임신 즈음에 여러 남자와 성관계를 맺어서 남편이 자신의 자식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면 부인과 자식을 위해 귀한 고기를 나눠주지 않을 것이고 장기간 돌보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지원은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상황은 일부일처의 관계라고 할 수 없다.

성재기 씨 주장: 이혼은 고귀한 사랑을 훼손하고 약속과 신뢰를 저버리는 행동이므로 가능하면 해서는 안 된다.
나의 주장: 애가 있는 경우 이혼하면 애에게 상당한 피해를 주지만 애가 다 컸거나 없다면 이혼해도 문제가 없다.

나는 결혼 생활을 해 보지 않았지만 남녀 관계에서 집착과 이기심으로 서로 많은 고통을 준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다. 따라서 원만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존경한다. 그러나 서로 싸우지 말고 깨끗하게 헤어져서 혼자 살던지 다른 관계를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결혼 관계에서 배우자에게 정서적으로 너무 집착하거나 남들에게 비난 받고 싶지 않아서 이혼하지 않거나 경제적으로 의존하려고 한다면 바람직하지 않다. 이혼할 때 고려할 가장 중요하고도 거의 유일한 사항은 아직 덜 자란 자식이 있는지 여부이다.

성재기 씨 주장: 사랑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 물질적인 공평함만 따지는 '평등부부'는 잘못된 것이다.
나의 주장: 자녀가 있는 경우 남편 또는 아내의 입장보다는 아버지 또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며 부부 간의 공평함을 따지는 '평등부부'는 2차적인 것이다.

일단 자녀를 낳아 기르게 되면 남성/여성으로서 자신의 권익보다는 자녀의 행복과 정서적 안정을 우선으로 해야한다. 따라서 남편 입장에서는 설사 아내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더라도 아내를 비난하거나 싸우지 말고 가정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자신이 앞장서서 희생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며, 이는 아내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부부 간의 평등을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부성/모성 우선주의는 이상적인 것으로서 현실적으로는 실천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부성/모성 우선주의를 실천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평등부부든 남녀평등이든 뭐를 하더라도 진정한 가정의 화목은 이루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참고: 내가 쓴 글, <남녀 평등 주의보다 우선하는 부성/모성 우선 주의.>

1 comment:

  1. 성재기 씨는 2013년 7월에 사망하셨습니다. 제 반론에 대해 답글을 달아 주실 가능성이 0.001%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불가능해졌군요. 성재기 씨의 촌철살인의 말씀을 다시 듣고 싶습니다. 한국의 남성 권익을 더욱 신장시키는 동시에, 귀하의 발전을 기대했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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